
솔직히 저는 오랫동안 공감 능력을 타고나는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순한 아이는 자연스럽게 친구 마음을 알아주고 고집 센 아이는 어쩔 수 없다고 여겼습니다. 그 생각이 완전히 틀렸다는 걸 깨달은 건 제 아이가 친구 장난감을 빼앗고 아무렇지도 않게 돌아섰던 어느 날이었습니다. 그 순간 저는 혼부터 냈습니다. 그리고 한참 뒤에야 제가 틀렸다는 걸 알았습니다.
감정 언어가 없으면 공감도 없습니다
아이가 친구를 밀쳤다는 이야기를 들었을 때 저는 반사적으로 왜 그랬어, 그러면 안 되지라고 했습니다. 아이는 울거나 입을 닫았고 그 자리는 끝났습니다. 행동은 멈췄지만 마음속에서 뭔가 배웠다는 느낌은 전혀 없었습니다. 제가 직접 겪어보니 결과를 지적하는 방식으로는 공감 능력이 자라지 않더라고요.
나중에 알고 보니 아이가 화를 낸 이유는 따로 있었습니다. 그날도 장난감을 계속 빼앗겨서 속상했던 겁니다. 저는 결과만 보고 아이가 느낀 감정의 맥락은 전혀 보지 못했던 것입니다. 그 뒤로 저는 방식을 바꿨습니다. 무슨 일이 있었어?, 많이 속상했겠다고 먼저 말하기 시작했습니다. 이때 핵심이 되는 것이 바로 감정 언어입니다.
감정 언어란 슬픔, 서운함, 질투, 부끄러움처럼 내면의 상태를 명확히 표현하는 어휘 체계를 말합니다. 아이가 이런 단어들을 자주 듣고 사용해야 타인의 마음도 읽을 수 있습니다. 감정을 말로 접해보지 못한 아이는 상대방의 표정을 봐도 그게 무엇을 의미하는지 연결하기 어렵습니다. 심리학에서는 이를 정서 인식 능력이라고 부릅니다.
정서 인식 능력이란 자신과 타인의 감정 상태를 정확하게 파악하고 이름 붙이는 능력을 뜻합니다. 연구에 따르면 어릴 때부터 감정 어휘를 풍부하게 접한 아이일수록 또래 관계에서 친사회적 행동 즉 상대를 돕거나 배려하는 행동을 더 자주 보인다고 합니다. 제 경험상 이건 꽤 단순한 방식으로도 실천이 됩니다. 그림책을 읽으며 이 아이는 왜 울었을까?, 친구가 뭐라고 했을 때 기분이 어땠을까? 같은 질문을 곁들이는 것만으로도 아이의 감정 어휘가 달라지는 게 느껴졌습니다.
이야기 속 주인공을 통해 안전하게 다양한 감정을 경험하는 방식인 셈입니다. 역할 놀이도 비슷한 효과가 있었습니다. 병원 놀이나 가게 놀이를 하면서 손님이면 어떤 기분이었을까?, 아픈 사람한테는 뭐가 필요할까? 같은 말을 자연스럽게 끼워 넣었습니다. 이 과정에서 조망 수용 능력이 조금씩 길러지는 것 같았습니다. 조망 수용 능력이란 자신의 시점을 벗어나 다른 사람의 입장과 감정을 상상해 보는 인지적 능력을 말합니다.
이 능력은 혼내서 생기는 게 아니라 반복적인 경험 속에서 서서히 발달합니다. 집에서 제가 실제로 자주 사용했던 감정 언어 패턴을 정리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 동생이 장난감을 잃어버려서 많이 속상했겠네.
- 친구가 기다려줬을 때 고마웠겠다.
- 엄마도 오늘 피곤해서 좀 쉬고 싶어.
- 네가 밀렸을 때 놀랐겠다.
별것 아닌 것 같아도 이런 말들이 쌓이면서 아이는 감정이라는 것이 말로 표현할 수 있는 것이라는 사실을 배우게 됩니다.
공감 교육, 자기표현과 함께 가야 진짜입니다
시간이 지나면서 아이에게 변화가 생겼습니다. 친구가 울면 먼저 다가가고, 동생이 힘들어하면 장난감을 건네기도 했습니다. 솔직히 이건 예상 밖이었습니다. 혼내는 방식으로는 몇 달이 지나도 달라지지 않던 아이가 감정을 같이 들여다보는 방식으로 바뀌고 나서는 몇 주 안에 달라지기 시작했습니다. 그런데 여기서 한 가지 조심해야 할 부분이 있습니다.
공감을 무조건 참고 양보하는 것으로 오해하면 오히려 역효과가 납니다. 제가 처음에 이 부분을 놓쳤습니다. 아이에게 공감을 가르친다며 친구가 원하면 줘야지, 네가 참아야지라는 말을 반복했습니다. 그러다 보니 아이가 자기 감정을 억누르는 것처럼 보이는 순간이 생겼습니다. 공감 교육에서 반드시 함께 다뤄야 하는 개념이 자기 표현력입니다.
자기 표현력이란 자신의 감정과 욕구를 타인에게 해치지 않는 방식으로 적절히 전달하는 능력입니다. 진짜 공감은 나를 지우는 것이 아니라 내 마음도 소중하게 여기면서 동시에 상대 마음도 이해하는 균형입니다. 친구가 속상할 수 있겠네. 그런데 네 마음도 중요해. 어떻게 말하면 좋을까?라는 대화가 그 균형을 잡아줍니다. 아동발달 전문가들은 이를 사회정서학습이라는 개념으로 설명합니다.
사회정서학습이란 감정 인식, 자기 조절, 공감, 대인관계 기술, 책임 있는 의사결정을 통합적으로 키우는 교육 접근법을 말합니다. 미국을 비롯한 여러 나라에서 학교 교육 과정에 공식 도입할 만큼 그 효과가 입증된 분야입니다. 부모 자신의 태도도 큰 역할을 합니다. 아이에게 배려를 요구하면서 정작 가정 안에서 감정적인 말투나 무례한 태도를 보이면 교육의 효과는 사라집니다. 아이는 말보다 관계의 분위기 속에서 더 많이 배우기 때문입니다.
제 경험상 이게 가장 어려운 부분이었습니다. 피곤한 날, 바쁜 날, 아이 행동이 마음대로 안 되는 날. 그 순간에도 감정을 먼저 인정하는 말 한마디를 꺼내는 것이 쉽지는 않았습니다. 공감 능력 교육에서 부모가 빠지기 쉬운 실수를 정리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 결과만 보고 혼내기 (아이가 왜 그 행동을 했는지 맥락을 보지 않음)
- 억지 양보를 공감 교육이라 착각하기
- 아이에게만 배려를 요구하고 부모는 감정적으로 반응하기
- 공감을 즉시 완벽하게 기대하기 (공감은 반복 속에서 서서히 자람)
아이에게 타인의 마음을 이해하는 능력을 길러주고 싶다면 먼저 아이 자신이 충분히 공감받아야 합니다. 늘 다그침만 받는 아이에게 타인 마음을 세심하게 보라고 요구하는 것은 무리입니다. 내 감정을 이해받은 경험이 있어야 다른 사람의 감정도 자연스럽게 바라볼 수 있게 됩니다. 공감은 특별한 수업 한 번으로 완성되지 않습니다. 동생이 울었을 때 함께 바라본 순간 그림책 속 주인공 마음을 이야기했던 시간 친구와 다툰 뒤 같이 생각해 본 경험들이 하나하나 쌓이며 자랍니다.
오늘 아이가 아직 서툴러 보여도 괜찮습니다. 지금 배우는 중이고 그 과정에 부모가 함께 있다는 것 자체가 이미 충분한 교육입니다. 감정을 말로 꺼내고 타인의 마음을 함께 상상하고 존중의 모습을 꾸준히 보여주는 것. 그 반복이 언젠가 함께 있으면 따뜻한 사람을 만들어냅니다.